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새크라멘토 킹스 (문단 편집) === 과도기 === 하지만 이 때부터 킹스는 대체로 하락기에 접어들었다. 그 동안 샘 레이시, 필 포드, 네이트 아치발드 등 스타가 간간히 나오긴 했으나, 일단 이기지를 못하니 플레이오프는 5번밖에 못 갔고, 이것 때문에 관중이 올 리가 없었다. 그리고 이 당시 캔자스시티는 당대 메이저리그 강호였던 야구팀과 [[내셔널 풋볼 리그|NFL]] 강호 [[캔자스시티 치프스]]가 더 대세였고, 같은 구장을 쓰던 [[NHL]] 팀 캔자스시티 스카우츠(현 [[뉴저지 데블스]])처럼 연고지 내 흥행 하위권을 책임졌다. 1983년에 캘리포니아의 주도 [[새크라멘토]]의 향토사업가 그렉 루켄빌과 조 벤베누티에게 팀이 팔린 뒤, 1985년에는 다시 연고지를 그들의 사업 본거지인 새크라멘토로 이전했다. 초기에는 새크라멘토 스포츠 아레나(초대 ARCO 아레나)를 쓰다가[* 1988년 이후 통신회사 스프린트 커뮤니케이션즈로 넘어가면서 업무용 건물이 됐고, 2005년에는 캘리포니아 주 소비자보호국(DCA)으로 또 넘어갔다.] 1988년부터 ARCO 아레나(2대)로 옮겼다. 그러나 일단 암흑기에 접어든 팀이 뭐가 달라질 이유는 없었다. 애당초 망해가던 이 팀은 1986-87시즌부터 1994-95시즌까지 9년 연속 PO 진출 실패라는 수모를 당했고,[* 이 시절 킹스의 부진함을 잘 알려주는 일화가 있는데 86년 드래프트 6순위로 뽑힌 [[케니 스미스]]는 처음 팀 버스에 탔을때 감독 [[빌 러셀]] 옆 자리가 비어있었으나 감독 옆에 앉기 싫어 슬그머니 다른 자리를 찾았다. 그러나 [[빌 러셀|러셀]]은 "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!"라고 했고, [[케니 스미스|스미스]]가 왜 그러냐고 묻자 킹스 선수들을 가리키며 "왜냐면 얘도 루저고(...), 얘도 루저고, 얘도 루전데 뭘 배우겠냐!"고 일갈했다고. [[케니 스미스|스미스]]가 직접 밝힌 일화에 따르면 [[빌 러셀|러셀]]이 킹스 연습 중 졸고 있다가 퍼뜩 깨서 "연습 집어치워! 니들이 그 따위로 못하지 않으면 내가 왜 졸겠어?!"라고 했다고 한다. 사실 한국에선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면모지만 [[빌 러셀|러셀]]은 하고 싶은 말 눈치보지 않고 거리낌없이 말하는 걸로 유명하다.] NBA 전체적으로 비인기 팀으로 안 좋게 이름을 날렸다.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렇다 할 스포츠가 없던 [[새크라멘토]] 시민들이 그들을 꾸준히 응원해 줬다는 것인데, 1991년에 [[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]]에서 온 [[미치 리치몬드]]를 중심으로 리오넬 시몬스와 월트 윌리엄스, 듀안 커즈웰, 바비 헐리 같은 이들이 공수전환 빠른 스피드 농구를 선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으나 재미가 없다는 소리도 들었다. 1992년에 로스앤젤레스의 부동산업자 짐 토마스가 팀을 산 뒤, 1994년에 로고 및 팀 컬러를 종전의 촌스러운 파랑-빨강-흰색에서 보라-은색으로 바꾸고 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수석 책임부사장 제프 페트리를 운영부사장 겸 단장으로 모셔왔다. 1995/96 시즌에는 39승 43패로 8번 시드를 얻어 플옵까지 갔지만 시애틀 슈퍼소닉스에게 1승 3패로 굴러떨어졌고, 1996/97 시즌에는 중반까지 그럭저럭 가다가 1997년 3월 7일 이후 치러진 12경기에서 11패를 기록해 34승 48패로 플옵을 못 갔다. 도중에 게리 세인트진 감독이 5년여만에 잘리고 에디 조던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메꾸기도 했다. 1997/98 시즌에는 27승 55패로 하위권에 처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